오늘 날이 참 더웠다. 33도의 쨍쨍한 여름날씨였다.
너무 더워서 맛있는 디저트를 파는 소소한 카페에 가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달콤한 마카롱을 시킨 후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폈다. 아메리카노와 마카롱이 나오고 한입 들이키려 고개를 들었는데 창밖에 폐지를 줍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를 관찰하게 되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혹시 시선을 느끼실까 관심없는 척 지켜보았다. 마스크도 쓰지않은 채 자신의 몸집보다도 큰 손수레가 버거운지 하늘을 쓱 한번 보고는 힘겹게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 놓인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마카롱이, 에어컨의 시원하다못해 쌀쌀한 공기가 부끄러웠다. 무엇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어느새 마음 속에 시원한 음료를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심장을 쿵쿵 두드렸다. 머릿속에선 당장 앞에 있는 슈퍼에 가서 드려야겠다고 계획까지 세웠지만 이게뭐라고 실천이 참 어렵더라. 카더라통신에서 들은 것처럼 사실은 저렇게 폐지를 줍는 분들이 굉장히 부자라더라. 이런 이야기가 괜스레 생각나기도 하고.
그렇게 고민하다 할아버지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디까지 가셨나 급히 눈으로 할아버지를 찾았다. 안되겠다 이러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 결국 카드를 들고 뛰쳐나와 할아버지가 어디쯤 가셨는지 눈으로 확인한 후 슈퍼로 달려가 이온음료와 마스크를 샀다. 그리고 할아버님께 달려가 "할아버님 마스크쓰고 다니세요"라고 한마디를 하며 손에 쥐어드렸다. 더 따뜻한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뭔가 내가 친절을 베푼다는게 괜스레 부끄러웠다. 그래서 사춘기소녀마냥 손에 턱 쥐어드리고 쌀쌀맞게 말을 던진 뒤 얼른 돌아와버렸다. 그렇게 카페로 돌아오며 '더 다정하게 말씀드릴껄..', '마스크를 안썼다고 타박하는 것 처럼 느끼셨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카페에 돌아와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음료와 마스크를 손에 쥐여드리며 한마디를 건넸을 때 할아버지의 옅은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띄며 이 걸 본인이 써도 되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숙인듯 인사를 하는 듯 애매하게 몸동작을 취하며 "네"라고 대답하고 급히 카페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 처럼 쌀쌀맞은 사춘기소녀는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또 곰곰히 그 때를 기억하다 생각난 건 할아버지의 누렇게 뜨고 갈라진 긴 손톱이었다.
그래서 또 한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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